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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더니 온몸에 닿는 바람이 '시원했다'.
이 얼마만에 맛보는 느낌인지!
지난 달 중순에 마지막으로 남은 작업을 끝냈다.
그 후로 몇 권분 역자교정을 한 것 말고는 여름 내내 집에 콕 박혀 있었다.
더위에도 지쳤고 슬럼프 상태이기도 했고 또 딸내미가 갑작스럽게 독립한다고 해서 머리가 복잡했다.
오히려 일이 없는 기간인 것이 다행이었달까.
원래 계획으로는 책을 많이 읽을 생각이었는데
위에 쓴 이유로 책도 손에 잘 잡히지 않았다.
날마다 옆에 쌓아 두기만 했지.
계속 그 상태로 있으면 완전히 퍼져 버릴 것 같아 온라인 스터디를 하나 신청했다.
많은 분량은 아니지만 날마다 그날치 스터디 과제를 하며 간신히 날짜를 기억했다.
번역가 두 분이 함께 쓴 책이 나와서 주문해서 읽다가
어제 그 중 한 분의 페이스북을 들어가 봤다.
글도 워낙 잘 쓰시는 분이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죽죽 읽어 내려가다 어느 대목에서 멈칫했다.
어려운 책을 작업 중이라 찾아봐야 할 단어도 많다는 내용이었다.
몰랐던 단어, 알지만 다시 확인해 본 단어 찾아서 단어장에 쓰고 시간 날 때마다 외우려고 애쓰신다는...
머리를 한 대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베테랑 번역가도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는데 나는 뭘 했나 생각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뭘 해도 늘 뜨뜻미지근한 수준까지밖에 안 하는 나.
그래서 실력도 그냥저냥한 그대로 늘지 않고 있나 보다.
아니 솔직히 털어놓자면 퇴보하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무엇부터 할지 생각해 보자.
그리고 생각에서 그치지 말 것.
여기가 갈림길일 거다, 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