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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번역이란 무엇일까.
번역이란 길에 들어선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아니 몇 번은 생각해 봤을 주제이기에 쉽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도, 막상 어느 하나를 최고의 번역이라고 꼽으려니 망설여진다.
성실한 번역? 그야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겠지. 그러나 성실함만으로 다 통과되지 못한다는 사실은 입문반 넉 달과 실전반 석 달을 지내면서 이미 뼈저리게 느꼈다.
정확한 번역? 이 또한 당연한 소리. 그런데 ‘원문을 정확하게 옮긴 번역’이 정확한 번역이라고 했을 때 과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정확하다’고 봐야 하는 걸까. 아직 번역이 무엇인지 잘 몰랐던 시절에 생각했던 정확함-일대일 대응-이 사실은 ‘정확한 번역’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는데,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하면 정확해지는 걸까.
유려한 번역? 물론 멋지고 부럽다. 내 문체가 유려함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에 배울 수 있다면 꼭 배우고도 싶다. 그러나 모든 책을 다 유려하게 번역하면 그것으로 괜찮은 걸까? 특히 ‘못 쓴 원문을 매끈하게 만든 번역문’을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한 결론은 개인적으로 아직 내지 못했다.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번역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투명한 번역’이다. 독자가 번역문을 읽을 때 번역가의 존재를 미처 느낄 새 없이 마치 저자가 처음부터 한국어로 쓴 글을 읽는 듯한 느낌을 받는 글, 그것이 바로 투명한 번역이다. 또, 사소한 오역이나 뭉뚱그림도 없이 저자의 원문을 철저하게 파악하고 완전하게 옮겨서, 저자에게도 독자에게도 전혀 켕기는 데가 없는 번역이 투명한 번역이다.
그러나 말하기는 이렇게 쉬워도 그 ‘투명함’이 쉽게 얻어질 리 없다. 원문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설렁설렁 재미 삼아서만 책을 읽어서는 곤란할 테고, 독자가 자연스러운 한국어라고 느끼려면 깊고 넓은 한국어 지식과 글쓰기 실력이 꼭 필요하다. 많이(+정확하게) 읽고, 많이(+고민하며) 쓰고, 많이 생각하는 것. 기본적인 이야기지만 최고의 번역을 낳기 위해서 이것보다 더 나은 방법은 없을 듯하다.
무엇보다도 오늘 내 최고의 번역이 1년 후 최고의 번역이 아니기를 바란다. 어느 책에서 읽은 내용처럼 세차게 흐르는 강물에 그냥 떠 있을 수는 없을 테니까. 떠내려가든지(퇴보) 죽을힘을 다해 헤엄쳐서 앞으로 나가든지(발전), 이 두 가지 중에서 느리더라도 조금씩 앞으로 나가면서 순간마다 최고의 번역을 했다고 자부할 수 있었으면 한다.
2009/11/30
재작년 가을에 실전반 수업 과제로 썼던 글.
오랜만에 읽어 보니 지금 내 모습이 부끄럽기 짝이 없다.
나는 순간마다 최고의 번역을 하고 있는가.
재작년 가을에 실전반 수업 과제로 썼던 글.
오랜만에 읽어 보니 지금 내 모습이 부끄럽기 짝이 없다.
나는 순간마다 최고의 번역을 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