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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
이호백 글, 이억배 그림(1997) 재미마주
<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은 첫 눈에 사람을 사로잡는 매력이 있는 책이다. 자신감이 가득 찬 얼굴로 옆을 보고 있는 수탉의 표지그림부터 그 이전에 나왔던 우리나라 그림책과는 다른 맛이 느껴진다.
(지금은 표지 그림이 바뀌어서 느낌도 좀 달라졌습니다. ^^*)
(지금은 표지 그림이 바뀌어서 느낌도 좀 달라졌습니다. ^^*)
줄거리를 간략하게 써 보면...
어느 봄날, 튼튼한 수평아리 한 마리가 태어난다. 수평아리는 무럭무럭 자라서 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이 된다.
그러던 어느날, 자기보다 더 힘이 센 수탉이 나타난 뒤로 이 수탉은 술꾼으로 전락한다.
세월이 흘러 늙고 힘없어진 수탉은 절망에 빠지지만, 그의 아내는 잘 자라는 손주들, 힘 센 아들들, 알 잘 낳는 딸들을 보여주면서 그에게 예나 지금이나 세상에서 제일 힘세고 행복한 수탉임을 일깨워 준다.
전체적으로 인생과 가족의 의미를 한번쯤 돌아보게 하는 내용이어서 어른들이라면 모르지만 과연 아이들도 이 책을 좋아할까 라는 생각이 들지만, 막상 이 책을 대하는 아이들은 화려한 그림에 반하는 듯 하다.
사실 나는 <세상에서...>의 글(이호백)보다는 그림(이억배)에 훨씬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힘'으로 세상에서 1인자가 된다는 내용이나 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을 젊은 암탉들이 졸졸 따라다닌다는 표현은 가부장주의적인 냄새를 짙게 풍기고 있어서 나로 하여금 이 책을 사야하나 말아야하나를 고민하게 했다. 또 아들 딸 손주가 잘 자랐으니 지금도 세상에서 제일 힘센- 물론 행복할 수는 있지만- 수탉이라는 대목은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다.
어떤 이들은 이 책의 줄거리가 마치 IMF 이후에 직장에서 밀려난 우리 사회의 아버지들 이야기 같다며 매우 마음에 들어하기도 하지만, 내게는 반대로 여기저기서 들고 일어난 "아버지/남자 기 살리기" 캠페인 같은 느낌이 들어서 뒷맛이 개운치가 않다.
글에서 이처럼 상반되는 두 가지 생각(가족사랑 대 가부장주의)이 드는 반면 이억배님의 그림에는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다.
우리나라 단청이나 민화의 느낌이 짙게 풍기는 색채나 힘과 멋을 풍기는- 특히 닭벼슬이나 꼬리털을 볼 때 느껴지는- 수탉의 그림은 글 없이 그림만 봐도 흡족하다.
또, 수평아리가 친구들과 싸움을 하는 장면이나 수탉의 손주들이 말타기를 하는 장면, 기차놀이를 하는 장면은 아이들이 어울려 노는 모습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다.
수탉이 술꾼이 되어 곤드레만드레 하는 장면이나 마지막의 환갑장치 장면에서는 줄거리와 관계없이 구석구석을 찾아보는 재미 또한 만만치 않다. 이런 재미는 이후 작품인 <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에서도 계속 이어지는, 이억배님 특유의 유머감각이랄까?
이 책에서 또 한 가지 특기할만한 것은 대부분의 그림책에 쓰이는 하드커버 제본이 아니라 소프트커버 제본이라는 점이다.
사실 어른들은 책을 사 줄 때 오랫동안 보았으면 하는 생각에 하드커버 제본을 선호하는 편이지만(나 또한 예외가 아님), 우리 아이(여섯살)부터가 가볍고 펼치기 쉬운 이 책을 훨씬 좋아한다.
어쨌든 <세상에서...>는 '정성스럽게 만든 우리 그림책'이라는 말에 부끄럽지 않은, 멋진 그림책이다.
1999/11/10
방송대 유아문학 과제>
잠시 방송대 국문과 공부를 할 때(배우는 내용이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달라서 1년 만에 그만두었다...)
다른 과 과목을 들으면서 과제로 냈던 글이다.
띄어쓰기, 문단 나누기 하나도 고치지 않고 그때 글 그대로 올린다.
이때가 어린이도서연구회 활동을 하기 전이니
사실상 내가 쓴 첫 서평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거 전에 쓴 글도 몇 개 있긴 한데 그건 내가 순수하게 책을 읽고 썼다기 보다는
책을 읽어 줬을 때 딸내미의 반응을 기록한 육아일기 비슷한 거여서 생략. ^^*
그나저나 언제 다 올린다지...
그나마 별로 글을 많이 쓰지 않아서 다행이야. -_-;;;
* 표지 출처: yes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