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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이야기
미카엘 엔데 글(1979) 차경아 옮김(1996) 문예출판사
연거푸 두 번을 읽었다. 그래도 하나 정리되지 않은 느낌. 아주 깊은 수렁에서 허우적거리다 간신히 빠져나온, 그런 기분이다. 재미없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데 그렇다고 푹 빠져서 읽었다고 하기에도 어려운, 어쨌든 특이한 느낌을 주는 책이었다.
어느 것 하나 잘 하는 것 없고, 혼자서 이야기를 생각해 낸다는 이유로 친구들에게 늘 놀림감이 되는 소년 바스티안이 우연히 손에 넣게 된 책 <끝없는 이야기>를 읽기 시작하면서 이야기는 펼쳐진다.
책 속에 펼쳐지는 세계인 환상계 의 중심인 어린 왕녀의 병을 고칠 방법과 환상계를 무(無)로 만드는 존재를 막을 방도를 찾기 위해 책 속의 소년 아트레유가 기나긴 모험을 하고 돌아오는 것이 전반부라면, 책 바깥의 세계, 즉 현실의 소년 바스티안이 책 속으로 들어가서 겪는 이야기가 후반부를 이루고 있다.
주인공이 책이나 거울 등을 통해서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것은 동화뿐만 아니라 만화나 영화에서도 자주 쓰이는 구성이다. 그러나 이 흔한 구성을 탄탄히 붙들어 주는 것은 책과 바스티안의 관계이다. 바스티안은 평소에도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걸 즐기고 자신이 머물러 있는 시간과 장소를 잊을 정도로 책에 빠지는 아이다. 그런 그에게 책은 단순한 매개물이 아니라 만남과 동시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물건인 것이다. 우연히 만나게 된 책에 그냥 빠지는 것이 아니다.
바스티안이 처음 환상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순수하게 어린 왕녀와 환상계를 구하고자 하는 마음에서였다. 그러나 자신이 원하는 것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환상계에서 바스티안은 한 가지 소망을 이루면 또 다른 것을 소망하게 되고 아름다움이나 강함, 용기를 모두 얻고 난 후에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감탄 받는 존재가 되고 싶어한다. 이것을 위해 그는 뒤따라 올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무작정 다른 이를 돕거나 새로운 존재를 만들어 내기도 하고, 다른 사람에게 들려주기 위한 이야기를 지어내기도 한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충고를 해 주는 친구 아트레유를 버리고 끝내 환상계의 황제가 되어 모든 것을 손안에 두고 싶어한다. 이러한 바스티안의 모습은 끝없는 상승 욕망에 시달리다가 끝내는 목적과 수단이 뒤집히곤 하는 우리의 평범하고 어리석은 모습 그대로이다.
그러나 환상계에서 하나의 소망을 이룰 때마다 바스티안은 현실세계에 대한 기억을 하나씩 잃는다. 모든 것을 잃고 이름마저 잃는 바스티안의 이 모습 또한 헛된 망상에 빠져서 현실을 잃어버리는 우리네 모습을 풍자하는 내용일 것이다.
어린 왕녀가 바스티안에게 건네준 표식에 씌여있는 <네 뜻대로 행하라>는 말은 자유를 가장한 방종을 뜻하는 게 아니며, 네 <뜻>은 바로 <참된 의지 >이며 <자신도 모르는 자신의 가장 깊은 비밀>이다. 이것을 알기 위해 환상계에서 자신의 모든 기억을 잃었다가 다시 태어난(정신적으로) 바스티안은 이미 이전의 바스티안이 아니다. 내면적으로 한 계단 훌쩍 뛰어오른 것이고 현실 세계로 돌아와서는 아버지와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된다.
바스티안과 대비되는 모습으로 용감하고 영리한 존재로 그려지는 아트레유는 사실 바스티안의 또다른 모습이다. 자기 내부의 참 본질을 보게 된다는 마술 거울 속에서 아트레유는 바스티안의 모습을 본다(158쪽). 바스티안이 그릇된 길을 갈 때 그와 맞서게 되는 아트레유의 모습은 바로 바스티안 속에서 갈등하는 마음이다.
환상계는 현실세계와 밀접하게 연결된 세계이지만, 사람들이 꿈꾸는 것을 멈추고 더이상 믿지 않게 되면서부터 무(無)로 변해갔다. 그 대신 거짓된 환상(망상, 거짓말 등)이 현실세계로 넘어와서 사람들을 사로잡는다.
우리가 환상 이라는 말에 대해 가지는 가벼운 느낌과는 달리 엔데는 환상계를 자신 내면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경험을 하는 세계로 묘사한다(267쪽). 내면의 성찰을 하지 않은 결과는 거짓말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이 밖에도 책의 곳곳에서 다루는 내용은- 사람을 사로잡는 정열에 대해서라든가(19쪽) 생명을 무릎 꿇리는 슬픔에 대해서(92-97쪽), 또 이름과 사물/존재의 관계(269쪽) 죽음과 삶의 관계(347쪽) 등- 줄거리 파악과는 별개로 책을 읽는 동안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했다.
2000/05/09
어도연 외국동화분과 발제>
* 표지 출처: yes24
미카엘 엔데 글(1979) 차경아 옮김(1996) 문예출판사
연거푸 두 번을 읽었다. 그래도 하나 정리되지 않은 느낌. 아주 깊은 수렁에서 허우적거리다 간신히 빠져나온, 그런 기분이다. 재미없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데 그렇다고 푹 빠져서 읽었다고 하기에도 어려운, 어쨌든 특이한 느낌을 주는 책이었다.
어느 것 하나 잘 하는 것 없고, 혼자서 이야기를 생각해 낸다는 이유로 친구들에게 늘 놀림감이 되는 소년 바스티안이 우연히 손에 넣게 된 책 <끝없는 이야기>를 읽기 시작하면서 이야기는 펼쳐진다.
책 속에 펼쳐지는 세계인 환상계 의 중심인 어린 왕녀의 병을 고칠 방법과 환상계를 무(無)로 만드는 존재를 막을 방도를 찾기 위해 책 속의 소년 아트레유가 기나긴 모험을 하고 돌아오는 것이 전반부라면, 책 바깥의 세계, 즉 현실의 소년 바스티안이 책 속으로 들어가서 겪는 이야기가 후반부를 이루고 있다.
주인공이 책이나 거울 등을 통해서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것은 동화뿐만 아니라 만화나 영화에서도 자주 쓰이는 구성이다. 그러나 이 흔한 구성을 탄탄히 붙들어 주는 것은 책과 바스티안의 관계이다. 바스티안은 평소에도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걸 즐기고 자신이 머물러 있는 시간과 장소를 잊을 정도로 책에 빠지는 아이다. 그런 그에게 책은 단순한 매개물이 아니라 만남과 동시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물건인 것이다. 우연히 만나게 된 책에 그냥 빠지는 것이 아니다.
바스티안이 처음 환상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순수하게 어린 왕녀와 환상계를 구하고자 하는 마음에서였다. 그러나 자신이 원하는 것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환상계에서 바스티안은 한 가지 소망을 이루면 또 다른 것을 소망하게 되고 아름다움이나 강함, 용기를 모두 얻고 난 후에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감탄 받는 존재가 되고 싶어한다. 이것을 위해 그는 뒤따라 올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무작정 다른 이를 돕거나 새로운 존재를 만들어 내기도 하고, 다른 사람에게 들려주기 위한 이야기를 지어내기도 한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충고를 해 주는 친구 아트레유를 버리고 끝내 환상계의 황제가 되어 모든 것을 손안에 두고 싶어한다. 이러한 바스티안의 모습은 끝없는 상승 욕망에 시달리다가 끝내는 목적과 수단이 뒤집히곤 하는 우리의 평범하고 어리석은 모습 그대로이다.
그러나 환상계에서 하나의 소망을 이룰 때마다 바스티안은 현실세계에 대한 기억을 하나씩 잃는다. 모든 것을 잃고 이름마저 잃는 바스티안의 이 모습 또한 헛된 망상에 빠져서 현실을 잃어버리는 우리네 모습을 풍자하는 내용일 것이다.
어린 왕녀가 바스티안에게 건네준 표식에 씌여있는 <네 뜻대로 행하라>는 말은 자유를 가장한 방종을 뜻하는 게 아니며, 네 <뜻>은 바로 <참된 의지 >이며 <자신도 모르는 자신의 가장 깊은 비밀>이다. 이것을 알기 위해 환상계에서 자신의 모든 기억을 잃었다가 다시 태어난(정신적으로) 바스티안은 이미 이전의 바스티안이 아니다. 내면적으로 한 계단 훌쩍 뛰어오른 것이고 현실 세계로 돌아와서는 아버지와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된다.
바스티안과 대비되는 모습으로 용감하고 영리한 존재로 그려지는 아트레유는 사실 바스티안의 또다른 모습이다. 자기 내부의 참 본질을 보게 된다는 마술 거울 속에서 아트레유는 바스티안의 모습을 본다(158쪽). 바스티안이 그릇된 길을 갈 때 그와 맞서게 되는 아트레유의 모습은 바로 바스티안 속에서 갈등하는 마음이다.
환상계는 현실세계와 밀접하게 연결된 세계이지만, 사람들이 꿈꾸는 것을 멈추고 더이상 믿지 않게 되면서부터 무(無)로 변해갔다. 그 대신 거짓된 환상(망상, 거짓말 등)이 현실세계로 넘어와서 사람들을 사로잡는다.
우리가 환상 이라는 말에 대해 가지는 가벼운 느낌과는 달리 엔데는 환상계를 자신 내면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경험을 하는 세계로 묘사한다(267쪽). 내면의 성찰을 하지 않은 결과는 거짓말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이 밖에도 책의 곳곳에서 다루는 내용은- 사람을 사로잡는 정열에 대해서라든가(19쪽) 생명을 무릎 꿇리는 슬픔에 대해서(92-97쪽), 또 이름과 사물/존재의 관계(269쪽) 죽음과 삶의 관계(347쪽) 등- 줄거리 파악과는 별개로 책을 읽는 동안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했다.
2000/05/09
어도연 외국동화분과 발제>
* 표지 출처: yes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