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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 아가씨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글() 햇살과나뭇꾼 옮김(2002) 소년한길
1.
어렸을 적, 집에 있던 열 권짜리 안데르센 전집 덕분에 <인어공주>나 <미운 오리새끼> 같은 유명한 이야기 말고도 꽤 많은 안데르센 동화를 읽었다. 그 당시에는 그저 다른 동화들과는 분위기가 좀 다르다거나 재미없다고만 생각했는데, 요즘 안데르센 동화를 다시 읽으면서 그 이야기들 뒤에는 많은 다른 내용들이 담겨 있다는 것을 느낀다.
"한 꼬투리에서 난 완두콩 다섯 알"도 예전에 읽을 때는 죽어가는 소녀에게 희망을 준 완두콩 이야기 정도로만 머리 속에 남아있었는데, 지금 다시 읽어보니 종교적인 분위기도 조금 풍기고 인생살이에 대한 비유처럼 읽히기도 한다.
2.
한 꼬투리 안에서 자라난 완두콩 다섯 알은 각자 다른 꿈을 꾼다. 넓은 세상으로 가길 원하는가 하면, 해를 향해 날아가고 싶어하기도 하고 어디든 좋으니까 날아간 곳에서 살겠다고도 한다. 그리고 '그냥 되는 대로 되는' 거라고 생각하는 완두콩도 있었다. 아직 꼬투리가 열리기 전에 자신들을 위한 뭔가 '뜻있는' 일을 떠올리며 조바심치고, 각자 꿈에 부풀어 있는 완두콩의 모습은 아직 세상을 잘 모르는 아이들의 치기어린 자신만만한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사내아이의 피리총 속에 들어가서 여기저기로 쏘아올려진 완두콩들은 자기가 생각한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된다. 지붕 홈통에 빠졌다가 비둘기 모이가 되어버리기도 하고, 도랑물에 빠져 퉁퉁 불어버리기도 한다. 이 중에서 원했던 대로 번듯하게 된 완두콩은 없다. 한 치 앞날을 내다보지 못하는 우리들의 삶처럼 완두콩들도 자기 머릿속에서 그린 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길을 간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되는 대로 되는' 거라던 완두콩은 어느 다락방 창틀에서 자라면서 병든 여자아이와 그 엄마에게 희망을 주는 귀한 존재가 된다. 이 대목은 누구를 어디에 쓸 건지는 신만이 아신다는 뜻으로도 보이고, 가장 겸손한- 신에게 자신을 맡기는- 존재가 신에게 가장 사랑을 받는다는 뜻으로도 보인다.
3.
지금 읽고 있는 <안데르센 동화>(소년한길, 햇살과나무꾼 옮김)와 <어른을 위한 안데르센 동화전집>(현대지성사, 윤후남 옮김)의 번역을 조금 비교해 봤다. 그런데 이 짧은 글 안에서 꽤나 많은 부분이 틀려서 껄끄럽기 짝이 없다.
"그냥 되는 대로 되는 게 좋아!" (한길)
"그래, 곧 알게 되겠지." (현대지성사)
피리총에 들어가기 전에 가장 큰 완두콩이 하는 이 말은 둘 중 어느 한 쪽의 번역이 이상하다고 볼 수 밖에 없다.
"그냥 되는 대로 되는 거야!" (한길)
"정해진 대로 되겠지." (현대지성사)
이 말은 다락방 창틀에 떨어지는 완두콩이 두 번이나 반복해서 하는 말인데, 읽는 이에게 주는 느낌이 너무나도 다르다. "그냥 되는 대로"와 "정해진 대로"(신의 뜻??)가 같은 뜻으로 보이는지.
2002/10/29
어도연 외국동화분과 발제>
* 표지 출처: yes24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글() 햇살과나뭇꾼 옮김(2002) 소년한길
1.
어렸을 적, 집에 있던 열 권짜리 안데르센 전집 덕분에 <인어공주>나 <미운 오리새끼> 같은 유명한 이야기 말고도 꽤 많은 안데르센 동화를 읽었다. 그 당시에는 그저 다른 동화들과는 분위기가 좀 다르다거나 재미없다고만 생각했는데, 요즘 안데르센 동화를 다시 읽으면서 그 이야기들 뒤에는 많은 다른 내용들이 담겨 있다는 것을 느낀다.
"한 꼬투리에서 난 완두콩 다섯 알"도 예전에 읽을 때는 죽어가는 소녀에게 희망을 준 완두콩 이야기 정도로만 머리 속에 남아있었는데, 지금 다시 읽어보니 종교적인 분위기도 조금 풍기고 인생살이에 대한 비유처럼 읽히기도 한다.
2.
한 꼬투리 안에서 자라난 완두콩 다섯 알은 각자 다른 꿈을 꾼다. 넓은 세상으로 가길 원하는가 하면, 해를 향해 날아가고 싶어하기도 하고 어디든 좋으니까 날아간 곳에서 살겠다고도 한다. 그리고 '그냥 되는 대로 되는' 거라고 생각하는 완두콩도 있었다. 아직 꼬투리가 열리기 전에 자신들을 위한 뭔가 '뜻있는' 일을 떠올리며 조바심치고, 각자 꿈에 부풀어 있는 완두콩의 모습은 아직 세상을 잘 모르는 아이들의 치기어린 자신만만한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사내아이의 피리총 속에 들어가서 여기저기로 쏘아올려진 완두콩들은 자기가 생각한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된다. 지붕 홈통에 빠졌다가 비둘기 모이가 되어버리기도 하고, 도랑물에 빠져 퉁퉁 불어버리기도 한다. 이 중에서 원했던 대로 번듯하게 된 완두콩은 없다. 한 치 앞날을 내다보지 못하는 우리들의 삶처럼 완두콩들도 자기 머릿속에서 그린 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길을 간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되는 대로 되는' 거라던 완두콩은 어느 다락방 창틀에서 자라면서 병든 여자아이와 그 엄마에게 희망을 주는 귀한 존재가 된다. 이 대목은 누구를 어디에 쓸 건지는 신만이 아신다는 뜻으로도 보이고, 가장 겸손한- 신에게 자신을 맡기는- 존재가 신에게 가장 사랑을 받는다는 뜻으로도 보인다.
3.
지금 읽고 있는 <안데르센 동화>(소년한길, 햇살과나무꾼 옮김)와 <어른을 위한 안데르센 동화전집>(현대지성사, 윤후남 옮김)의 번역을 조금 비교해 봤다. 그런데 이 짧은 글 안에서 꽤나 많은 부분이 틀려서 껄끄럽기 짝이 없다.
"그냥 되는 대로 되는 게 좋아!" (한길)
"그래, 곧 알게 되겠지." (현대지성사)
피리총에 들어가기 전에 가장 큰 완두콩이 하는 이 말은 둘 중 어느 한 쪽의 번역이 이상하다고 볼 수 밖에 없다.
"그냥 되는 대로 되는 거야!" (한길)
"정해진 대로 되겠지." (현대지성사)
이 말은 다락방 창틀에 떨어지는 완두콩이 두 번이나 반복해서 하는 말인데, 읽는 이에게 주는 느낌이 너무나도 다르다. "그냥 되는 대로"와 "정해진 대로"(신의 뜻??)가 같은 뜻으로 보이는지.
2002/10/29
어도연 외국동화분과 발제>
* 표지 출처: yes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