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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잘즈만 글(2003) 노진선 옮김(2005) 푸른숲
이 책은 작가 마크 잘즈만이 소설에 필요한 청소년 범죄 자료를 찾다가 친구의 권유로 LA 중앙 소년원에서 작문 수업을 하게 되면서, 2년에 걸쳐 아이들과 수업을 한 실제 이야기와 소년원 아이들이 수업 시간에 쓴 글을 담은 책이다.
잘즈만은 일주일에 두 번씩 아이들과 만나지만 그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지’ 않는다. 아이들이 마음 속에 담고 있는 생각을 자유롭게 풀어낼 수 있도록 시간을 주고, 무엇을 쓸지 몰라 망설이는 아이에게는 너 자신을 한 단락으로 표현해 보라는 식으로 글감에 대해 짤막한 조언을 던질 뿐이다. 아이들이 쓴 글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다 해도 그것을 고치거나 거기에 대해 비평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들으며 공감해 준다.
시간이 흐르면서 아이들은 마음의 벽을 허물고,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못하고 쌓아두었던 자기 감정을 글로 풀어내며 스스로를 돌아본다. 아이들이 쓴 글에는 잘못된 길을 선택했던 것을 후회하는 마음과 자신을 사랑해 달라는 바람이 진솔하게 드러나고, 지금까지 제대로 깨닫지 못했던 ‘나’라는 존재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이 엿보인다. 스스로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글쓰기라는 것이 이렇게 큰 힘을 지녔던가 새삼 놀랍다.
그러나 이런 아이들을 보며 들떴던 마음도 잠시, 이야기가 끝나갈 때쯤 되면 다시 냉혹한 현실로 돌아온다. 이토록 순수하고 정직한 글을 토해내는 아이들이 사회에서는 살인죄를 지은 범죄자이고 평생을 교도소에서 보내야 하는 앞날만이 기다린다는 사실은 잘즈만과 책을 읽는 우리를 다시 한 번 갈등하게 한다. 도대체 이들에게 작문 수업을 해서 얻어지는 게 무엇이냐는 주위 사람들의 물음에 잘즈만은 다만 정직하게 글을 쓰고자 하는 용감한 아이들이 있기 때문에 가는 것이라며, 좋은 경험은 짧더라도 아예 없는 것보다 낫다고 답한다. 단순하지만 아마도 가장 현명한 답이 아닐까.
책을 읽는 내내 우리네 아이들 생각이 났다. 놓여있는 곳은 책 속의 아이들과 다르지만, 사회와 학교와 어른들에 대해서 아이들이 갖는 느낌은 별로 다르지 않을 성 싶다. 지금 사방이 꽉 막힌 곳에 갇혔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에게, 그리고 아이들과 소통하기를 원하지만 쉽지 않은 어른들에게 이 책은 각기 다른 느낌으로 전해질 것이다.
2005/05/30
어도연 회보 신간 소개>
* 표지 출처: yes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