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당산나무 아랫집 계숙이네
윤기현 글(2003) 사계절
초등학교 4학년인 계숙이는 부모와 떨어져서 할아버지, 할머니, 증조할머니, 동생 계성이와 함께 시골에서 살고 있다. 자주 만나러 오지 않는 아버지 어머니가 그립기도 하고 가끔은 원망스러울 때도 있지만, 계숙이는 다정한 할머니의 보살핌 아래 즐겁고 씩씩하게 지낸다.
어느 날, 밭에 농약을 치던 할머니가 갑자기 쓰러져 돌아가시면서, 계숙이에게는 치매에 걸린 증조할머니, 부인을 잃은 슬픔에 힘겨워 하는 할아버지와 어린 동생을 돌보고 살림을 꾸리면서 학교를 다녀야 하는 힘든 생활이 시작된다.
삶에 담긴 역사
계숙이를 둘러싼 계숙이네 식구들과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그들의 삶이 곧 일제 식민지 시대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우리나라의 역사임을 알게 된다.
어린 나이에 살림을 도맡아 하는 계숙이를 불쌍히 여겨서 도와주는 재윤이 할머니의 지난 삶은 그대로 옛날 우리나라 여자들의 힘들었던 삶을 보여준다.
계숙이네 식구들만 보면 독기오른 눈으로 막말을 퍼붓는 상철이 할머니와 아들 만석이를 통해서, 6.25 때 공산군의 심부름을 했다는 이유로 부역죄를 쓴 사람들과 그 가족들이 주위에서 멸시받고 그 후 몇십 년 동안이나 연좌제로 묶여 고생한 이야기를 듣는다.
6.25에 참전했다가 부상을 입고 제대한 계숙이네 할아버지는 ‘상이 용사의 가족을 빨갱이 자식들이 때린다’는 이유로 만석이와 만순이에게 주먹을 휘두르고 마을에서 행패를 부렸지만, 그 속내를 살펴보면 전쟁에서 입은 부상인데도 불구하고 나라에서 제대로 보상을 받기는커녕 적절한 치료도 못 받고 신음하는 퇴역 군인의 아픔이 있다.
계숙이와 계성이를 시골에 있는 시부모에게 맡기고 내려오지 않는 계숙이네 부모는 농촌을 떠나 도시로 향하는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일 뿐이다. 글 속에서는 계숙이 어머니의 입장이 자세히 그려지지 않아서 아쉬움이 남긴 하지만, 계숙이 어머니를 그저 사치스럽고 분수를 몰라서 시골에 안 오려는 여자로만 보기에는 농촌의 여자들 삶이 그리 녹록치 않다는 것도 우리는 안다.
계숙이 아버지는 재혼을 하기 위해 몇 번이나 선을 봤지만 다 거절당하고, 중국 연변 처녀와 결혼하게 된다. 새어머니의 이야기를 통해 일제 치하에서 중국으로 건너갔던 사람들의 그 후 이야기와 한국의 불법 체류 외국인 노동자의 모습도 엿볼 수 있다.
‘역사’라고 하면 교과서 속에나 나오는 나와 동떨어진 이야기, 아주 먼 옛날 옛적 이야기처럼만 느끼던 아이들은 <당산나무 아랫집 계숙이네>를 읽으면서 이런 일들이 사실은 백 년 남짓한 사이에 일어난 일이고, 다른 사람 아닌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삶이란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될 것이다.
아쉬운 것들
어린 나이에 살림을 도맡아 하는 계숙이를 불쌍히 여겨서 도와주는 재윤이 할머니의 지난 삶은 그대로 옛날 우리나라 여자들의 힘들었던 삶을 보여준다.
계숙이네 식구들만 보면 독기오른 눈으로 막말을 퍼붓는 상철이 할머니와 아들 만석이를 통해서, 6.25 때 공산군의 심부름을 했다는 이유로 부역죄를 쓴 사람들과 그 가족들이 주위에서 멸시받고 그 후 몇십 년 동안이나 연좌제로 묶여 고생한 이야기를 듣는다.
6.25에 참전했다가 부상을 입고 제대한 계숙이네 할아버지는 ‘상이 용사의 가족을 빨갱이 자식들이 때린다’는 이유로 만석이와 만순이에게 주먹을 휘두르고 마을에서 행패를 부렸지만, 그 속내를 살펴보면 전쟁에서 입은 부상인데도 불구하고 나라에서 제대로 보상을 받기는커녕 적절한 치료도 못 받고 신음하는 퇴역 군인의 아픔이 있다.
계숙이와 계성이를 시골에 있는 시부모에게 맡기고 내려오지 않는 계숙이네 부모는 농촌을 떠나 도시로 향하는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일 뿐이다. 글 속에서는 계숙이 어머니의 입장이 자세히 그려지지 않아서 아쉬움이 남긴 하지만, 계숙이 어머니를 그저 사치스럽고 분수를 몰라서 시골에 안 오려는 여자로만 보기에는 농촌의 여자들 삶이 그리 녹록치 않다는 것도 우리는 안다.
계숙이 아버지는 재혼을 하기 위해 몇 번이나 선을 봤지만 다 거절당하고, 중국 연변 처녀와 결혼하게 된다. 새어머니의 이야기를 통해 일제 치하에서 중국으로 건너갔던 사람들의 그 후 이야기와 한국의 불법 체류 외국인 노동자의 모습도 엿볼 수 있다.
‘역사’라고 하면 교과서 속에나 나오는 나와 동떨어진 이야기, 아주 먼 옛날 옛적 이야기처럼만 느끼던 아이들은 <당산나무 아랫집 계숙이네>를 읽으면서 이런 일들이 사실은 백 년 남짓한 사이에 일어난 일이고, 다른 사람 아닌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삶이란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될 것이다.
아쉬운 것들
앞서 얘기했듯이 이 책 안에는 옛 여성들의 신산한 삶에서부터 시작해서 일제 치하에서 중국으로 이주한 사람들의 얘기, 강제 징용, 6.25 때 부역, 전후 참전군인 문제와 연좌제, 농촌을 떠나는 젊은 사람들, 해외 결혼과 외국인 노동자 이야기 등 정말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물론 우리네 삶 자체가 역사라는 작가의 말에 나 역시 공감하고, 우리나라에서 백 년 남짓한 시간 동안 그렇게나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책 한 권에 이 많은 내용을 담아내다보니 읽으면서 숨이 차기도 하고, 이야기 속에 충분히 녹아들지 않은 느낌이 든다. 이렇게 슬쩍 슬쩍 건드리고만 지나가지 말고 더 차분하고 길게 풀어내거나, 아예 몇 가지만 골라서 자세히 써냈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그리고 이 이야기들이 주인공 계숙이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엮어진다기보다 계숙이를 가운데 두고 주변 사람들이 등장할 때마다 저마다 자기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는 듯한 구성은 아이들에게 뭔가 많은 것을 알려주고 싶다는 작가의 마음이 앞섰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계숙이라는 아이는 또 어떠한가. 아무리 갑자기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해도, 초등학생 한 사람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버거운 일을 떠맡아 하면서도 불평 한 마디 하지 않는 계숙이는 너무 지나치게 어른스럽고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어서 선뜻 공감하기 어렵다. 차라리 힘들 때 아이답게 푸념하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그 밖에도 다른 사람들의 일생은 그렇게 자세히 설명하면서도 유독 계숙이 어머니에 대해서는 작가가 불친절하게 느껴지는 점, 계숙이 할아버지와 만석이의 나이차가 잘 이해되지 않아서 읽다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점 등 여러 아쉬운 점이 보인다.
<당산나무 아랫집 계숙이네>에는 작가가 농촌에 대해 품고 있는 애정이 글의 밑바탕에 깔려있고 한 번 책을 잡으면 끝까지 주욱 읽어나가게 하는 글맛이 있다. 아쉬운 점만 보고 한쪽으로 치워버리기에는 나름대로 좋은 점이 많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위에서 말한 여러가지 아쉬운 점이 더 눈에 뜨이는지도 모르겠다.
채 다 읽기도 전에 ‘작가가 이 말을 하고 싶어서 쓴 글이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게 아니라, 그 하고 싶은 말이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서 이야기는 이야기대로 즐기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그런 책을 만나고 싶다.
물론 우리네 삶 자체가 역사라는 작가의 말에 나 역시 공감하고, 우리나라에서 백 년 남짓한 시간 동안 그렇게나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책 한 권에 이 많은 내용을 담아내다보니 읽으면서 숨이 차기도 하고, 이야기 속에 충분히 녹아들지 않은 느낌이 든다. 이렇게 슬쩍 슬쩍 건드리고만 지나가지 말고 더 차분하고 길게 풀어내거나, 아예 몇 가지만 골라서 자세히 써냈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그리고 이 이야기들이 주인공 계숙이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엮어진다기보다 계숙이를 가운데 두고 주변 사람들이 등장할 때마다 저마다 자기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는 듯한 구성은 아이들에게 뭔가 많은 것을 알려주고 싶다는 작가의 마음이 앞섰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계숙이라는 아이는 또 어떠한가. 아무리 갑자기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해도, 초등학생 한 사람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버거운 일을 떠맡아 하면서도 불평 한 마디 하지 않는 계숙이는 너무 지나치게 어른스럽고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어서 선뜻 공감하기 어렵다. 차라리 힘들 때 아이답게 푸념하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그 밖에도 다른 사람들의 일생은 그렇게 자세히 설명하면서도 유독 계숙이 어머니에 대해서는 작가가 불친절하게 느껴지는 점, 계숙이 할아버지와 만석이의 나이차가 잘 이해되지 않아서 읽다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점 등 여러 아쉬운 점이 보인다.
<당산나무 아랫집 계숙이네>에는 작가가 농촌에 대해 품고 있는 애정이 글의 밑바탕에 깔려있고 한 번 책을 잡으면 끝까지 주욱 읽어나가게 하는 글맛이 있다. 아쉬운 점만 보고 한쪽으로 치워버리기에는 나름대로 좋은 점이 많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위에서 말한 여러가지 아쉬운 점이 더 눈에 뜨이는지도 모르겠다.
채 다 읽기도 전에 ‘작가가 이 말을 하고 싶어서 쓴 글이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게 아니라, 그 하고 싶은 말이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서 이야기는 이야기대로 즐기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그런 책을 만나고 싶다.
2005/06/08
어도연 책토론회 발제>
* 표지 출처: yes24
어도연 책토론회 발제>
* 표지 출처: yes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