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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은 편지함
열두 살 순남이는 병으로 돌아가신 엄마 대신 집안일에 어린 동생을 돌보느라 바쁘고, 학교에서는 친한 친구 하나 없이 조용히 학급 문고만 읽는 아이다. 학교에서 이메일 보내는 법을 처음 배운 날, 주소를 물어볼 만한 친구가 아무도 없어서 동화책에 적힌 작가 주소로 이메일을 보냈다가 생각지도 못했던 답장을 받고 작가와 이메일을 주고받는 사이가 된다.
할머니가 남동생을 바라고 지은 자기 이름이 창피하고, 가난한 집안 얘기도 자랑거리 없는 학교 얘기도 쓰기 싫은 순남이는 평소에 부러워 하던 친구 혜민이의 이름을 빌어 이메일을 쓰지만, 그러다보면 어느새 ‘친구 순남이’ 얘기를 쓰고 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속얘기를 털어놓으면 들어주고 격려해 주는 메일을 받을 때마다 기쁘고 그 후로는 좋은 일만 생기는 것 같다. 학교에서도 학급 문고 담당인 혜민이와 친해져서 서로 집까지 오가게 된다. 작지만 따스한 주위 어른들의 마음씀씀이도 고맙게 느껴진다. 늘상 혼자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닫고 있던 순남이가 자기를 긍정해 주는 사람들을 만나서 힘을 얻고, 접어두었던 꿈을 다시 꾸게 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무심코 시작했다가 점점 커진 거짓말이 순남이를 괴롭힌다. 죄책감 때문에 다 털어놓고 싶지만, 모처럼 마음을 나누는 사이가 된 작가 선생님과 친구가 실망하고 화낼까봐 도저히 말을 꺼낼 수가 없다. 게다가 새로 나온 책을 보내주겠다며 주소를 물은 작가가 책이 돌아왔다고 학교 홈페이지에 ‘박혜민’을 찾는 글을 올렸다는 말에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도망가 버리고 싶은 마음만 든다. 누구나 한번쯤 겪어봤을 이런 마음의 갈등이 마치 내 일인 듯 세세하게 전해진다.
결국 순남이가 거짓 이름으로 메일을 보냈다는 걸 안 작가는 순남이가 자기 이름으로 편지를 보내는 날까지 기다리겠노라 답장을 한다. 얼핏 보기에는 어른인 작가의 배려로 문제가 다 해결된 것 같지만, 순남이가 비록 거짓 이름 뒤에서였지만 자기 얘기를 솔직히 전하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두 사람 사이에 마음이 이어지지 않았다면 작가가 그리 쉽게 순남이를 이해할 수 있었을까.
<받은 편지함>이라는 제목을 보며 소통과 배려의 뜻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2005/09/23
어도연 회보 신간 소개>
* 표지 출처: yes24
어도연 회보 신간 소개>
* 표지 출처: yes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