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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일로
필리스 레이놀즈 네일러 글(1991) 국지수 옮김(2004) 서돌
우리 집 딸내미가 이제나 저제나 바라는 일이 있다면 집에 강아지를 한 마리 데려오는 것이다. 주위 사람들은 외동인 아이가 얼마나 심심하겠냐며 한 번 키워보지 그러냐고 쉬운 소리들을 한다. 그러나 집에 개를 데려와서 예뻐만 하면 되는 아이와 달리, 식구들 뒤치다꺼리도 귀찮은데 개 한 마리가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저지레 할 생각을 하면 차마 엄두가 나지 않아 못 들은 척하고 있다.
벌써 5년도 넘게 장래 애견미용사를 꿈꾸고 개 기르는 법이 실린 책을 열 권도 넘게 읽어서 이론상으로는 모르는 게 없는 녀석에게 물들었는지, 표지에 개가 그려진 책을 보면 나도 모르게 손이 간다. 마티와 샤일로도 그렇게 만났다.
넉넉지 못한 집안 형편 탓에 개를 키우지 못하는 마티는 저녁 산책길에서 비쩍 마른 개를 만난다. 집까지 자기 뒤를 따라온 개가 평소에 행실 안 좋은 져드 아저씨네 개라는 걸 알고 제대로 보살핌 받지 못하는 모습에 마음이 아프다. 샤일로라 부르기 시작한 그 개를 데려다 기르고 싶지만, 엄마 아빠는 개를 어떻게 다루든 그건 주인이 할 나름이라며 당연히 개를 데려다 줘야 한단다.
며칠 후 또다시 샤일로가 도망쳐 나오자, 마티는 집 뒷산에 우리를 만들어 숨겨주고 절대로 돌려보내지 않겠다 다짐한다. 주인에게 학대받는 개를 어떻게 해서든 지켜주려는 아이의 절박하고도 순수한 마음이 사랑스럽지만, 남의 개를 데려와서 복잡한 문제를 만들기 싫고 쉽사리 한 생명을 떠안아 책임질 마음이 들지 않는 어른들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간절히 원하던 샤일로를 데려오긴 했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다. 살아있는 개를 돌봐주려면 먹이기도 하고 시간 내서 놀아주기도 해야 한다. 갑자기 자기 삶에 뛰어든 샤일로를 지키기 위해 마티는 자기 밥을 남겼다 몰래 준 뒤 배고픔에 허덕이고, 동생이 뒷산에 따라오려는 것도 거짓말로 막는다. 익숙지 못한 거짓말을 하며 그야말로 악전고투하는 마티는 “한 번 거짓말을 하면 또 다른 거짓말을 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미처 깨닫기도 전에 삶 자체가 하나의 엄청난 거짓말이 되어버린다”(81쪽) 는 사실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주위 사람들을 속이는 게 결코 마음 편하지는 않지만 어떻게든 자기가 한 일이 옳다고 자신을 납득시켜야 하고, 그러다보니 머릿속이 엉켜 뭐가 뭔지 판단하기 힘겨워 하는 마티의 갈등이 생생하다.
평소에 잘 먹지 않던 으깬 호박을 접시에 듬뿍 덜어놓는 마티를 보고 아이가 뭔가 숨기고 있다는 사실을 엄마가 알아채는 대목에서는 빙그레 웃음이 난다. 나라도 만약 우리 애가 갑자기 호박이나 당근을 자기 몫으로 챙긴다면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의심했을 터이다. 별 것 아닌 일을 세심하게 잡아낸 이런 장면이 이야기를 더 실감나게 해 준다.
그러던 중 이웃집 사나운 개가 울타리를 넘어 들어와 샤일로를 심하게 물어뜯는 사건이 일어나고 그동안 애써 숨겨왔던 비밀이 모두 탄로난다. 아빠는 앞장서서 샤일로를 의사에게 데려가 치료를 받게 해 주지만 결코 마티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 개를 간절히 원하는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나 어른들은 어른들의 잣대로 상황을 재본다.
그저 불쌍한 개를 구해주고 싶고 제대로 돌봐주는 게 옳다고 생각하는 아이. 그에 앞서서 돈 내고 개를 산 진짜 개 주인이 누군지, 학대받는다는 증거를 잡을 수 있는지, 동물학대로 고소를 하면 과연 제대로 수사를 받을 수는 있을지 따져보는 어른들. 둘 중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고 잘라 말하기 힘든 일이다. 어른들의 태도가 세파에 찌들어 보이고 매정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생명과 책임의 무게를 느끼기 때문이라고 하면 너무 어른 입장에만 꿰어 맞춘 생각일까.
결국 마티는 져드 아저씨가 불법 사냥을 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그 일을 비밀로 하는 대신 사냥개 값만큼 일을 해 주고 샤일로를 데려올 수 있게 된다. 원하는 걸 얻기 위해 잘못된 일을 눈감아 주며 마티는 “세상에 모든 일이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202쪽)고 생각한다.
어른이 되고 보니 어떤 동화를 읽더라도 단순하게 아이의 마음만 따라가며 읽을 수가 없어졌다. 울고 웃는 아이의 마음을 느끼는 한편, 그런 아이를 어른의 눈으로 한 번 더 걸러서 보는 내가 있다. 순수하고 용감한 마티의 모습은 보기 좋지만,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자꾸만 마티보다 마티 엄마 아빠의 입장에 서곤 한다. 그러나 갈등을 거듭하며 조금씩 커가는- 변해가는- 마티를 보면 그렇게 세상을 알아가는 거지 싶은 생각이 들다가도 어른들 세상의 복잡한 문제에 부딪혀 본 아이가 과연 다음에도 지금처럼 한 가지를 위해 선뜻 나설 수 있을까 걱정스럽기도 하다. 아이가 자기 생각을 쉽게 꺾고 어른들의 잣대에 맞춰서 행동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불쑥 든다. 도대체 이 무슨 앞뒤가 안 맞는 태도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앞으로도 마티는 샤일로를 돌보면서, 또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면서 자신과 다른 어른의 기준, 세상의 기준과 수없이 부딪칠 것이다. 그러면서 점점 어른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겠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이 있으면 나머지를 돌아보지 않고 밀고 나갈 수 있는 아이의 마음도 잃지 않았으면 하는 욕심을 내 본다. 마티뿐만 아니라 내 아이도 때로는 무모한 용기를 낼 줄 알았으면 좋겠다. 그 무모한 용기가 내 흔들리는 잣대와 부딪칠 때면 또 다른 소리를 하게 되겠지만 말이다.
2006/04/13
어도연 회보 '내가 읽은 책'>
저 글을 쓴 지 2년 반 후에 결국 멍뭉이(;;;) 한 마리가 우리 식구가 되었고
'내 아이도 때로는 무모한 용기를 낼 줄 알았으면 좋겠다'란 말이 씨가 됐는지
우리 집 딸내미는 남들과 다른 길을 퍽퍽퍽 걸어 가는 중이다... OTL
* 표지 출처: yes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