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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드 스트라써 글(1981) 김재희 옮김(2006) 이프
영화나 책을 통해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가 저지른 만행을 볼 때마다 궁금했다. 히틀러나 나치 당원들은 그렇다 치고, 나머지 평범한 독일 국민들은 왜 거기에 반대하지 않았을까. 전쟁이 끝난 후에도 독일 사람들 대부분은 나치 돌격대가 무슨 짓을 했는지 전혀 몰랐다고 했다는데 과연 그럴 수가 있을까.
고든 고등학교 학생들도 역사 시간에 나치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나서 나와 똑같은 궁금증을 가졌지만, 벤 로스 선생님 역시 정확하게 대답해 주지 못한다. 어떤 자료에도 그 답이 나와있지 않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궁금증을 어떻게 풀어줄까 고민하던 벤 로스는 몇 가지 설정을 통해 나치 독일과 비슷한 분위기를 만들어서 학생들이 그 당시 독일 사람들이 느끼던 불안과 공포를 몸소 깨우치게 해 보고자 한다.
다음 수업 시간에 벤 로스는 학생들에게 수업 때는 언제나 바른 자세로 앉아 있다가 선생님이 질문하면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서 간결하게 답하고 앉도록 시킨다. 언제나 자유분방하게 행동하던 학생들이 얼핏 유치해 보이는 이런 지시에 잘 따를까 싶었지만, 교실 안에 흩어졌다가 신호에 맞춰 자기 자리로 빨리 돌아와 앉는 게임 같은 훈련을 통해 반 전체가 일치단결하는 느낌을 오랜만에 맛본 아이들은 열광한다. 생각해 보면 이 ‘전체가 하나 되는’ 짜릿함은 나도 여러 번 경험해 봤다. 나 자신을 단체 속의 하나로 보는 방식을 결코 좋아하지 않는데도, 그 느낌은 무척이나 강렬했던 기억이 난다.
벤 로스는 이 운동에 “파도”라고 이름을 붙여서 구호와 인사법을 정하고, 회원증을 만들어 나눠주며 아이들 중 몇 명에게는 규칙을 어기는 사람을 적발할 권리를 준다. 이제 파도는 ‘훈련을 통한 힘의 집결’, ‘공동체를 통한 힘의 집결’, ‘실천을 통한 힘의 집결’이라는 구호 아래 정말로 힘을 키워간다. 공동체 안에서는 누구나 평등하다는 말은 평소에 남과 비교당하며 지내던 아이들에게 얼마나 매력적으로 들렸을까. 왕따였던 아이는 가장 앞서서 파도의 규칙을 실천하며 아이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됐고, 반에서 늘 1등인 친구하고 친하게 지내지만 속으로는 시기하던 아이는 이제 그런 질투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 편안하다. 하나로 뭉치지 못해 만날 하위권에 머물던 축구부도 파도의 힘을 빌고자 한다. 선생님 또한 자기 말 한 마디면 아이들이 척척 움직이는 모습에 자기도 모르게 명령을 내리는 쾌감에 빠져든다.
하지만 파도 운동은 생각하지 못했던 결과도 함께 불러일으킨다. 파도 회원들은 파도에 동참하지 않는 학생들을 이상하게 생각하며 따돌리고, 심지어는 폭행하기도 한다. 학생들은 시험에서도 더 좋은 성적을 얻지만, 스스로 생각해서 의견을 내는 과제에서는 예전만큼 다양하고 좋은 결과를 보이지 않는다. 학교 신문에 파도를 비판하는 글을 쓴 학생의 사물함에는 빨간 페인트로 욕지거리가 써 있다. 바다로 너무 깊이 들어가면 파도에 휩쓸려 자기 뜻대로 움직일 수 없게 되듯이, 간단한 동기에서 쉽게 시작한 파도 운동은 이제 스스로 힘을 가지고 부피를 늘려가며 학생들의 눈을 가리고 집어삼킨다.
결국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벤 로스 선생님은 파도 회원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히틀러와 그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히틀러 소년단의 사진을 보여주며 파도를 키워낸 건 다름 아닌 자기자신 안에 있는 파시즘이었다는 사실을 폭로한다.
너무나도 씁쓸한 결말을 보고 이게 말이 되는 소리냐고 넘겨버리고 싶지만, 이 책은 완전한 픽션이 아니라 미국의 한 고등학교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을 바탕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래서 더욱 생생하고 더욱 끔찍하다.
사실 파도의 정체는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었다. 그런데도 별 의심없이 학생들이 파도에 동참한 것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권리를 포기한 채 나를 대신해 결정을 내려줄 지도자’(251쪽)가 있는 쪽이 더 편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자기가 생각하고 자기가 결정을 내리는 일에는 그만큼 무거운 책임도 같이 따르는 법이니까 말이다.
굳이 먼 독일이나 미국 땅까지 가지 않더라도,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모습은 많이 볼 수 있다.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 - “옛날처럼 누구 강한 놈이 나와서 확 틀어쥐어야 이 혼란한 사회가 제대로 굴러가지.” - 이나 독재자를 그리워 하는 몇몇 사람들한테서도 집요하게 우리 속에 숨어있는 파시즘의 그림자를 느낀다. 벤 로스는 파도의 경험을 통해 ‘사람들이 얼마나 쉽게 생각하기를 포기하는지, 얼마나 쉽게 자신의 믿음을 남의 손에 내맡기는지’(251쪽) 절실히 깨닫는다. 우리도 그래야만 할까? 직접 겪어보지 않아도 지나간 역사를 통해 깨달아야 하지 않겠나.
아무도 내 대신 생각해 줄 수 없는데도 그러길 원한다면, 뒤따라 오는 결과에도 우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그래서 마음이 무겁다.
덧글.
유행어랄지, 아이들 사이에서 요즘 많이 쓰는 말을 잔뜩 집어넣은 번역은 마음에 좀 걸린다. 한 번 책이 나오면 지금만 읽고 마는 게 아니니까 말이다.
영화나 책을 통해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가 저지른 만행을 볼 때마다 궁금했다. 히틀러나 나치 당원들은 그렇다 치고, 나머지 평범한 독일 국민들은 왜 거기에 반대하지 않았을까. 전쟁이 끝난 후에도 독일 사람들 대부분은 나치 돌격대가 무슨 짓을 했는지 전혀 몰랐다고 했다는데 과연 그럴 수가 있을까.
고든 고등학교 학생들도 역사 시간에 나치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나서 나와 똑같은 궁금증을 가졌지만, 벤 로스 선생님 역시 정확하게 대답해 주지 못한다. 어떤 자료에도 그 답이 나와있지 않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궁금증을 어떻게 풀어줄까 고민하던 벤 로스는 몇 가지 설정을 통해 나치 독일과 비슷한 분위기를 만들어서 학생들이 그 당시 독일 사람들이 느끼던 불안과 공포를 몸소 깨우치게 해 보고자 한다.
다음 수업 시간에 벤 로스는 학생들에게 수업 때는 언제나 바른 자세로 앉아 있다가 선생님이 질문하면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서 간결하게 답하고 앉도록 시킨다. 언제나 자유분방하게 행동하던 학생들이 얼핏 유치해 보이는 이런 지시에 잘 따를까 싶었지만, 교실 안에 흩어졌다가 신호에 맞춰 자기 자리로 빨리 돌아와 앉는 게임 같은 훈련을 통해 반 전체가 일치단결하는 느낌을 오랜만에 맛본 아이들은 열광한다. 생각해 보면 이 ‘전체가 하나 되는’ 짜릿함은 나도 여러 번 경험해 봤다. 나 자신을 단체 속의 하나로 보는 방식을 결코 좋아하지 않는데도, 그 느낌은 무척이나 강렬했던 기억이 난다.
벤 로스는 이 운동에 “파도”라고 이름을 붙여서 구호와 인사법을 정하고, 회원증을 만들어 나눠주며 아이들 중 몇 명에게는 규칙을 어기는 사람을 적발할 권리를 준다. 이제 파도는 ‘훈련을 통한 힘의 집결’, ‘공동체를 통한 힘의 집결’, ‘실천을 통한 힘의 집결’이라는 구호 아래 정말로 힘을 키워간다. 공동체 안에서는 누구나 평등하다는 말은 평소에 남과 비교당하며 지내던 아이들에게 얼마나 매력적으로 들렸을까. 왕따였던 아이는 가장 앞서서 파도의 규칙을 실천하며 아이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됐고, 반에서 늘 1등인 친구하고 친하게 지내지만 속으로는 시기하던 아이는 이제 그런 질투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 편안하다. 하나로 뭉치지 못해 만날 하위권에 머물던 축구부도 파도의 힘을 빌고자 한다. 선생님 또한 자기 말 한 마디면 아이들이 척척 움직이는 모습에 자기도 모르게 명령을 내리는 쾌감에 빠져든다.
하지만 파도 운동은 생각하지 못했던 결과도 함께 불러일으킨다. 파도 회원들은 파도에 동참하지 않는 학생들을 이상하게 생각하며 따돌리고, 심지어는 폭행하기도 한다. 학생들은 시험에서도 더 좋은 성적을 얻지만, 스스로 생각해서 의견을 내는 과제에서는 예전만큼 다양하고 좋은 결과를 보이지 않는다. 학교 신문에 파도를 비판하는 글을 쓴 학생의 사물함에는 빨간 페인트로 욕지거리가 써 있다. 바다로 너무 깊이 들어가면 파도에 휩쓸려 자기 뜻대로 움직일 수 없게 되듯이, 간단한 동기에서 쉽게 시작한 파도 운동은 이제 스스로 힘을 가지고 부피를 늘려가며 학생들의 눈을 가리고 집어삼킨다.
결국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벤 로스 선생님은 파도 회원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히틀러와 그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히틀러 소년단의 사진을 보여주며 파도를 키워낸 건 다름 아닌 자기자신 안에 있는 파시즘이었다는 사실을 폭로한다.
너무나도 씁쓸한 결말을 보고 이게 말이 되는 소리냐고 넘겨버리고 싶지만, 이 책은 완전한 픽션이 아니라 미국의 한 고등학교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을 바탕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래서 더욱 생생하고 더욱 끔찍하다.
사실 파도의 정체는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었다. 그런데도 별 의심없이 학생들이 파도에 동참한 것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권리를 포기한 채 나를 대신해 결정을 내려줄 지도자’(251쪽)가 있는 쪽이 더 편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자기가 생각하고 자기가 결정을 내리는 일에는 그만큼 무거운 책임도 같이 따르는 법이니까 말이다.
굳이 먼 독일이나 미국 땅까지 가지 않더라도,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모습은 많이 볼 수 있다.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 - “옛날처럼 누구 강한 놈이 나와서 확 틀어쥐어야 이 혼란한 사회가 제대로 굴러가지.” - 이나 독재자를 그리워 하는 몇몇 사람들한테서도 집요하게 우리 속에 숨어있는 파시즘의 그림자를 느낀다. 벤 로스는 파도의 경험을 통해 ‘사람들이 얼마나 쉽게 생각하기를 포기하는지, 얼마나 쉽게 자신의 믿음을 남의 손에 내맡기는지’(251쪽) 절실히 깨닫는다. 우리도 그래야만 할까? 직접 겪어보지 않아도 지나간 역사를 통해 깨달아야 하지 않겠나.
아무도 내 대신 생각해 줄 수 없는데도 그러길 원한다면, 뒤따라 오는 결과에도 우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그래서 마음이 무겁다.
덧글.
유행어랄지, 아이들 사이에서 요즘 많이 쓰는 말을 잔뜩 집어넣은 번역은 마음에 좀 걸린다. 한 번 책이 나오면 지금만 읽고 마는 게 아니니까 말이다.
2006/09/21
어도연 회보 '내가 읽은 책'>
* 표지 출처: yes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