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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노끼오의 모험
까를로 꼴로디 글(1883) 이현경 옮김(1998) 창비피노키오, 하면 아마 이 책을 제대로 읽어 본 적 없는 사람이라도 거짓말을 해서 코가 길어지는 얘기 정도는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어렸을 때 읽던 책 중에서는 커 가면서도 계속 손이 가서 읽고 또 읽는 책도 있는데, 이 책은 그야말로 한 30년 만에 다시 읽은 것 같다. (그렇다, 난 어렸을 적에도 피노키오를 별로 안 좋아했다!!!) 어른이 되어 다시 읽은 《피노키오》는 옛날보다도 더 교훈적인 이야기로 느껴졌지만, 그래도 이 말썽꾸러기가 왠지 귀엽게 느껴지는 건 태어나서 지금까지 나에게 끊임없이 고민거리를 던져주는 딸내미의 공(?!)이라 해야 할까.
나무토막을 깎아 만든 꼭두각시 인형 피노키오는 그야말로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끊임없이 말썽을 부리는 아이(인형?)다. 공부하기 싫고 학교 가기 싫고 일하기 싫고 잔소리 듣기 싫고. 놀고 싶고 편하게 지내고 싶고 좋아하는 것만 하고 싶고 그때그때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따라가고 싶은, 본능에 충실한 아이. 그러다 보니 본의 아니게 자기를 사랑해 주는 아빠 엄마를 마음 아프게 하기도 하고, 온갖 고생을 하게 된다. 그 순간에는 다른 이들의 충고에 귀 기울였으면 좋았을 걸, 다음부터는 이러지 말아야지 반성하지만, 일이 채 마무리 되기도 전에 또 다른 유혹에 빠지는 피노키오의 모습은 어찌 보면 안타깝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한심하기도 하다. 어른들 눈에는 빤히 보이는 앞일을 예측 못하고 꼭 스스로 뛰어들어 겪어봐야만 아는 아이들의 모습 그대로다.
그래도 이 말썽꾸러기 피노키오를 미워할 수 없는 것은 비록 한순간이지만 자기 잘못을 뉘우치는 진심이 엿보여서 그렇고, 심하다 싶을 만큼 통통 튀는 생명력에 끌려서다. 이제는 바뀐 듯 바뀐 듯 하다 또 삐끗하며 시작되는 사건도 읽는 사람을 얘기 속으로 끌어들인다.
한편 작가는 제뻬또와 파란 머리 소녀(=요정)라는 등장인물을 통해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부모의 모습을 그려냈다. 제뻬또와 요정은 아이를 먹이고 입히고 공부시키는 것부터 시작해서, 천방지축 피노키오가 몇 번이고 변덕을 부려도 인내심있게 기다려 주고 매번 아이가 되풀이해서 잘못을 저질러도 포기하지 않고 사랑으로 감싸준다. 그렇다고 그냥 오냐오냐 하는 것이 아니라 피노키오가 잘못을 저지르면 화도 내고 야단도 치지만 결코 내치지는 않는 모습을 보며 예나 지금이나 부모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똑같나 보다 생각했다. 물론 좋은 부모가 되는 건 피노키오가 착한 아이가 되는 것보다 더 어려울 것 같지만.
그러나 좀 넘친다 싶을 만큼 곳곳에 드러나 있는 교훈들은 읽는 내내 마음에 걸렸다. 제뻬또나 요정, 귀뚜라미, 그리고 많은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직설적으로 나오는 말이 과연 이 책을 읽는 아이들에게는 어떻게 느껴질지 모르겠다. 학교 가서 열심히 공부해야 쓸모있는 사람이 된다, 말썽 피우면 이런 무시무시한 일을 당한다, 착한 일을 해야 보상받는다, 이런 얘기들은 다 맞는 얘기지만(아니, 생각해 보면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아도 날마다 집에서 학교에서 질리게 들을 이런 잔소리를 동화를 통해서까지 들려줘야 하나 싶다. 혹여 생동감있는 캐릭터와 즐거운 얘기에 버무려져서 아이들에게 별 거부감 없이 다가간다고 해도, 이런 이야기가 과연 좋은 이야기인가에 대해서는 좀 더 깊이 생각해 봐야할 것 같다.
교훈주의에 찌든 이야기라고 버리기에는 아깝고, 이건 정말 좋은 책이라고 권하기에는 또 찜찜한 책 《피노키오》다.
2007/03/26
어도연 월요모둠 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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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지 출처: 알라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