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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가 책을 읽는다
박영숙 글(2006) 알마
아이와 함께 책 읽는 걸 좋아하는 사람 치고 자기 손으로 직접 도서관을 여는 꿈을 한두 번쯤 안 꾸어본 사람이 있을까. 나 또한 곧잘 그런 상상을 해 보지만 그때마다 ‘에이, 능력도 없으면서 내 주제에 무슨…….’ 하고 덮어 버리곤 한다. 그래서 가끔 들려오는 느티나무어린이도서관 이야기는 참 가깝고도 멀게만 느껴졌다.
제목을 처음 봤을 때는 어떻게 도서관을 잘 꾸려서 아이들에게 책을 읽게 할 수 있을까에 대해 쓴 책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 책에는 ‘아이들에게 책을 잘 읽히는 법’ 따위는 없다. 다만 책과 함께 아이들과 어울려 지내는 이야기가 있을 뿐이다.
처음 도서관을 여는 얘기에서부터 아이들에 대한 따스한 마음이 느껴졌다. 아파트로 둘러싸인 동네에 새로 어린이도서관, 아니 ‘책이 있는 놀이터’를 만들기 위해 몇십 번이나 도면을 고쳐 그리고, 아이를 들쳐 업고 서점에 나가 직접 책을 고르며,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아이들이 편하고 즐겁게 도서관에 드나들 수 있을까 생각하는 박영숙 관장의 노력도 놀라웠지만, 그보다 더 성큼 다가온 것은 아이들에게 온전하게 품을 내어주는 그 모습이었다.
‘책보다 사람 품이 먼저다’ 라는 소제목처럼 느티나무도서관에서는 결코 아이들에게 억지로 책을 읽으라고 하지 않는다. 애써 무얼 가르치려고 하지도 않고, 다만 아이들을 믿고 책이 있는 공간을 밑거름 삼아 스스로 자기 속의 씨앗을 싹틔우길 기다릴 뿐이다. 책꽂이를 타고 다니던 꼬마 타잔도, 우르르 도서관에 몰려와 물만 마시고 가던 아이들도, 가는 곳마다 뿌리 내리지 못하고 뛰쳐나오기를 되풀이하던 형제도, 이렇게 믿고 받아주는 어른들과 도서관을 ‘비빌 언덕’ 삼아서 조금씩 자라나는 얘기는 가슴 뭉클하게 다가왔다.
박 관장은 책을 통해 도서관은 아이들이 편안하게 책과 만날 수 있는 곳이어야 하고,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각기 다른 자기만의 능력을 가지고 있으니 이 내면에 있는 힘을 믿어주고 기다려야 한다고 힘주어 얘기한다. 그 말에 깊이 공감하면서, 한편으로는 몇년 동안 내 나름대로 어린이책을 가까이 하며 지낸 시간을 되돌아 보니 언제부터인가 ‘아이’는 잊어 버리고 ‘책’에만 관심을 쏟지 않았나 싶어 가슴 한구석이 뜨끔하다.
또 하나 책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느슨한 공동체’로 자리잡은 도서관 모습이었다. 나라는 사람은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만 자랐고, 워낙에 남들과 허물없이 어울리기 보다는 내 안의 동굴에 틀어박히길 좋아하다 보니(그러고 보니 엄마도 그랬다. 모녀 유전인가?) 남과 내가 하나 되어 지내는 일에 아직도 익숙하지 않다. 나 같은 사람도 느티나무 물을 먹으면 조금은 달라질 수 있을까? 아니 나야말로 그런 공간에 뛰어들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이 아니라 나를 위해서라도 말이다.
어딜 가든 동네마다 느티나무도서관 같은 곳이 생겨서 그이의 말처럼 책이 아이들의 삶에 위로를 주고 용기를 주었으면 좋겠다. 나처럼 어리버리하고 좀처럼 세상살이에 익숙해지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든든한 언덕이 되어주었으면 좋겠다. 아직은 내가 앞장서서 시작하겠다고 말도 못하면서 너무 큰 욕심인지 모르겠지만.
2007/04/09
월간 작은책>
* 표지 출처: yes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