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엄마가 사라진 어느 날
루스 화이트 글(1996) 김경미 옮김(2007) 푸른숲
손에 가시가 박혀본 적 있어? 잘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은 가시라서 가볍게 보고 그냥 놔 두면 며칠이 지나도 아물지 않아. 겉보기엔 멀쩡한 것 같아도 건드리면 찌릿하니 아픔은 그대로 남아 있지. 바늘로 헤집는 게 무서워도 가시는 빼내야만 하는 법이야. 아무리 오래 두었다 한들 가시가 살이 되진 않거든.
그런데 가시는 살에만 박히는 게 아닌가 봐. 얼마 전 읽은 책에 오래도록 마음 속에 가시가 박힌 채 지냈던 아이들 이야기가 있더라구.
우드로라는 남자아이가 있어. 어느 날 우드로가 일어나 보니 어제까지 같이 있던 엄마가 사라져 버렸어. 아무 것도 가져가지 않고 아무 흔적도 안 남긴 채 말이야. 우드로는 할아버지 집에서 지내게 되는데, 옆집에는 길고 탐스러운 머리카락이 자랑거리인 사촌 집시가 살아. 집시는 가끔씩 꿈 속에서 무서운 것을 볼 때가 있대. 그게 무언지는 확실히 모르지만 그 얼굴을 똑바로 들여다보지 못하고 매번 잠에서 깬다나 봐.
두 아이는 곧 친해져서 속마음도 조금씩 털어놓곤 해. 우드로의 소원은 사시인 눈을 고치는 것과 떠나간 엄마가 돌아오는 거야. 집시는 사람들이 자기의 예쁜 외모에만 관심 갖지 말고 진짜 자기 모습을 봐 주기를 바라지. 돌아가신 아빠가 그리운 만큼 새아빠가 마음에 안 차는 것도 힘들고.
집시는 우드로의 엄마이자 자기 이모인 벨이 어째서 갑자기 모습을 감췄는지 궁금했어. 엄마와 할머니, 할아버지와 조금씩 얘기를 나누면서, 이모 벨이 마음의 상처 때문에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걸 알게 되지. 결혼한 후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다는 것도. 자기처럼 상상력이 풍부하고 피아노를 잘 쳤다는 이모의 모습을 알아가는 동시에 집시는 자기 모습도 돌아보게 돼.
어떤 사건을 계기로 집시는 그동안 꾹꾹 눌러뒀던 분노를 토해내. 아빠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 현실은 너무나 괴롭기에 차라리 모르는 걸로 해 두고 싶어하던 무의식에서 벗어나는 순간, 집시는 이제 더 이상 엄마 아빠가 원하는 착한 딸, 이쁜이로 있지 않겠다고, 날 남겨두고 간 아빠가 밉다고 소리칠 수 있게 돼. 우드로 또한 엄마가 자기를 두고 떠나갔다는 걸 인정하기 싫어서 엄마는 이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로 들어갔다고 억지로 믿으려 했고, 그러면서도 자기한테만은 몰래 연락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매달려 있던 데서 벗어나지. 자기들을 사랑했지만 사랑보다 더 큰 고통 때문에 자신들을 두고 떠났던 아빠 엄마를 용서하는 집시와 우드로의 모습은 보는 사람의 가슴을 뭉클하게 해.
이런 심각한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이 책이 마냥 어둡지만은 않은 건 집시와 우드로의 학교 생활, 마을 사람들 이야기, 눈에 보일 듯이 그려내는 풍경 묘사가 가득해서일 거야.
오랜만에 앉은 자리에서 단숨에 읽었는데, 다 읽은 뒤에도 이런저런 생각이 머리 속에서 떠나질 않네. 당신은 어떠냐고, 혹시 마주하고 보듬을 용기가 없어서 마음 한 구석에 마냥 내팽개쳐 놓은 상처가 없냐고 쑤석거리는 것 같아.
2007/10/09
월간 작은책>
잡지에는 '~다' 체로 바꾸어서 나갔다.
내가 책에서 받은 느낌은 원래 쓴 이 글에 더 잘 담겨 있어서 이걸로 올린다.
* 표지 출처: yes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