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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구렁이 기차
권정생 글(1999) 우리교육《먹구렁이 기차》는 권정생의 첫 번째 동화집 《강아지똥》에 실렸던 동화에 나중에 쓴 동화를 더하여 그 중 저학년 아이들에게 읽힐 만한 글을 묶어낸 책이다. 권정생의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먹구렁이 기차》에 실린 글에서도 대부분 힘없고 어린 생명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일반적으로 예쁘고 귀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닌 강아지똥, 지렁이 등 작가의 표현을 빌자면 ‘버려지고 숨겨진 목숨’을 등장시켜 얘기를 풀어나간다.
이 책에서 우선 눈에 띄는 것은 홀로 서는 아이들 이야기가 많다는 점이다. 아마도 글을 쓸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작가는 한국 전쟁 이후에 부모를 잃거나 부모와 떨어져 살아야 하는 아이들에게 힘이 되는 이야기를 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한다.
<동근이와 아기 소나무들>에서 아기 소나무들은 부모 없이 할머니와 둘만 살다가 할머니가 돌아가시게 된 동근이 이야기를 듣고 울음을 터뜨린다. 약간 신파조로 보이긴 하지만, 아기 소나무들은 자신들도 엄마 아빠 없이도 씩씩하게 자라고 있다는 말로 끝을 맺는다.
<금희와 아기 물총새>의 금희는 냇물에 떠내려 온 아기 물총새를 살려 보려 애쓰지만 물총새는 죽고 만다. 죽은 물총새와 돌아가신 엄마를 연결시켜서 한 번 죽은 목숨은 돌아올 수 없다는 얘기를 전하며 금희는 엄마 없이 씩씩하게 살겠다고 다짐한다.
<오누이 지렁이>에서는 엄마가 죽고 서로 도우며 사는 누나와 동생 지렁이가 주인공이다. 앞 못 보는 지렁이 남매는 땅 속에서 바깥에 나가지도 못하고 견디며 지낸다. 바깥세상에서 목숨을 다한 것들이 땅 속으로 들어와 잠들었다가 영원히 아름다운 새 봄이 오면 되살아난다는 얘기에서는 자기 몸을 바쳐서 민들레에게 새 생명의 거름이 되어 주는 <강아지똥>의 느낌이 나기도 한다.
<눈길>의 아저씨는 다치고 부모 잃은 어린 동물들을 보살핀다. 동물들은 남쪽 나라의 왕자가 데리러 왔는데도 따라가지 않고 남는다. 다른 이에 의해 주어진 편안함이 아니라, 힘들어도 자기 땅에서 자기 힘으로 살면서 봄을 기다리려 하는 이야기는 우리의 현실을 슬쩍 암시한다. 그러나 갑자기 자신들을 둘러싼 세상 사람들과 자연물까지 ‘왠지 가엾다’고 하는 아기 동물들의 말은 그다지 와 닿지 않는다.
한편, 사회 현실을 담은 이야기가 또 다른 축을 이루고 있다.
<찬욱이와 대장의 크리스마스>에서 찬욱이는 육교 밑에서 구걸해서 왕초에게 가져다주며 사는 아이다. 자신도 어려운 상황이지만, 지하도에서 구걸하는 앉은뱅이 아저씨나 대장에게 마음 써 줄 줄 아는 찬욱이의 마음이 돋보인다. 어설프게 행복한 결말로 가지 않는 것도 마음에 든다. 그러나 작가의 종교적인 배경을 놓고 본다고 해도 끝부분에서 갑자기 예수님께 호소하는 장면은 약간 뜬금없어 보인다.
<왜가리 식구들의 슬픈 이야기>는 농약을 친 논에서 먹이를 찾아 먹고 죽어가는 왜가리 식구들의 얘기를 담았다.
<장대 끝에서 웃는 아이>의 주인공 난이는 서커스단에서 장대를 타는 아이다. 서커스단에서 탈출하려다 자기의 처지를 인정하고 거기에서 가치를 찾는 난이의 태도는 현실을 끌어안는 것인지 체념인지 잘 모르겠다. “슬프게 살고 있는 사람끼리 웃으며 살아가는 것이 더할 수 없이 아름답게 생각되었습니다”라는 대목을 편하게 보아 넘길 수 없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눈 때문에 산에서 내려온 토끼를 기르다가 봄이 되어 놓아주는 이야기를 담은 <산토끼>는 다른 글에 비해 평범하다.
동화를 읽는 재미가 느껴지는 글은 역시 그림책으로도 만들어진 적이 있는 <오소리네 집 꽃밭>이나 <강아지똥>이다. 다른 글에서 간간히 엿보이는 작가의 생각이 한데 모아진 작품이기도 하다.
<오소리네 집 꽃밭>에서 예쁜 자기 집 꽃밭을 두고 남의 꽃밭을 부러워하며 새 밭을 만들려던 오소리 아줌마를 통해서 ‘자기가 가진 것이 가장 아름답다’는 얘기를 모나지 않게 그려낸다.
<강아지똥>은 앞서 얘기했던 작가의 정신이 모두 투영된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너무나도 잘 알려진 강아지똥의 이야기에서는 너무 모자라지도 너무 지나치지도 않게 ‘사랑’과 ‘희생’을 얘기한 면이 돋보인다.
2008/05/20
어도연 연구실 토론회 발제>
* 표지 출처: yes24
어도연 연구실 토론회 발제>
* 표지 출처: yes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