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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공감
김형경 글(2006) 한겨레출판《천 개의 공감》은 한겨레신문에 2005년 5월부터 만 1년 동안 연재됐던 칼럼 ‘형경과 미라에게’ 중에서 소설가 김형경 님의 상담을 담은 책이다. 저자는 오랫동안 정신분석학과 심리학 관련 책을 읽어 왔고 2년에 걸쳐 정신분석을 받으며 자기 자신을 치유했던 경험을 앞서 나온 소설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과 여행에세이 《사람풍경》에서 풀어냈다. 여행지에서 겪은 일을 통해 우리가 맞닥뜨리는 다양한 감정을 파헤친《사람풍경》이 조금은 딱딱하고 차가운 느낌을 주는 교과서와 같다면 《천 개의 공감》은 예제를 들어 하나하나 설명한 쉬운 해설서라 하겠다.
책은 크게 ‘자기 알기’, ‘가족 관계’, ‘성과 사랑’, ‘관계 맺기’ 네 부분으로 나뉜다. 우리의 마음은 빙산과 비슷하다. 겉으로 나타나는 감정이나 행동은 사소할지 몰라도 그 내면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사실이, 그것도 여럿 숨어 있다. 가장 가깝고 사랑하는 - 아니 사랑해야 한다고 강박적으로 생각했던 - 사람들인 부모, 형제, 배우자, 아이와 부딪히며 상처 입고 상처 주며 힘들었던 사람들은 이제껏 고민하고 숨겨왔던 일이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데서 먼저 위안을 얻을 것이다. 그리고 저자의 차분한 안내에 따라 지금까지 모르고 살아 왔던 자기의 내면을 조금씩 들여다보게 된다. 결국 긴 마음 여행 끝에 우리는 ‘이 세상에서 우리가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우리 자신밖에 없다’(36쪽)는 결론에 다다른다.
사실 좋은 점을 먼저 얘기했지만 이 책이 그리 편안한 책은 아니다. 읽는 동안 한 마디로 콕 집어 말하기는 어려워도 이 대목 저 대목에서 어쩐지 껄끄러운 느낌을 받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냥 작은 문젯거리를 해결하고 싶을 뿐인데 그런 나의 내면에 분노, 우울, 불안, 무기력이 숨어 있다니! 게다가 연거푸 나오는 투사니 동일시니 나르시시즘이니 에로스니 하는 용어가 어렵기도 하거니와, 모든 문제에 프로이트 이론을 기계적으로 갖다 붙이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들 법하다. 성인이 되어 일어나는 대부분의 문제가 어린 시절에 부모, 특히 어머니와 제대로 애착 관계를 맺지 못한 데서 비롯된다는 진단도 읽는 이들을 불편하게 하는 점 중 하나다. 실제로 내가 아는 많은 이들도 이 책을 읽고 난 후 “무의식 속에 묻어둔 기억을 다 파헤치는 것이 좋은 일일까.” “이제 와 부모를 원망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나.”라는 반응을 보이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천 개의 공감》을 마음의 문제로 고민하는 이들에게 종종 권한다. 내가 만약 미술 치료를 받은 경험이 없었다면 나 또한 마음을 들쑤시는 듯한 이 책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을 터이다. 별 것 아닌 문제를 괜히 크게 떠벌이는 느낌이 들거나 내 얘기 같으면서도 부인하고 싶어지는 바로 그 대목이 ‘나’를 만나러 떠나는 출발점이라는 것을 내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서 알기 때문에 이 책에 신뢰가 간다.
이미 자기치유의 여정에 나선 이들에게는 때때로 들춰보며 힘을 북돋우는 책으로, 직접 상담을 받을 여력이 없거나 이쪽 분야의 책을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는 괜찮은 길잡이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물론 어느 경우이든 책 한 권을 만병통치약으로 생각하거나 받아들일 생각도 없이 무조건 비난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2009/06/26
아카데미 입문반 승급과제>
* 표지 출처: yes24
아카데미 입문반 승급과제>
* 표지 출처: yes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