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한밤중의 고양이 손님
다카도노 호오코 글, 나가노 히데코 그림(1998) 김난주 옮김(2009) 시공주니어
웃음을 자아내는 즐거운 이야기
예전에는 어른들이 ‘밤에 휘파람 불면 뱀 나온다’는 이야기를 종종 하셨다. 이와 비슷하게 일본에는 ‘한밤중에 휘파람을 불면 도둑이 든다’는 속담이 있단다. 이 속담 한 줄에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소풍을 내일로 앞둔 오누이가 있다. 둘은 설레는 마음에 잠 못 들고, 오빠 미쓰오는 장난으로 휘파람을 분다. 여동생 논코가 “할머니가 밤에 휘파람을 불면 도둑이 든다고 하셨잖아.”(7쪽)라고 말하는 순간 베란다에서 이상한 소리가 난다.
미쓰오가 커튼을 살며시 열자…….
번쩍!
으스스하게 번들거리는 두 호박색 빛에 오누이는 심장이 뚝 멎는 것 같았습니다. (8쪽)
사건의 시작이다. 뒤이어 양면을 가득 채운 삽화가 나오고, 독자의 시선은 어둠 속에서 번쩍 빛나는 눈으로 쏠린다. 이야기의 시작부터 강렬하다.
거듭되는 반전 또한 이야기에 재미를 더해주는 요소다.
한밤중에 느닷없이 하룻밤만 재워달라며 찾아온 고양이 손님 마사. 아이들은 ‘털이 푸석푸석하고 지저분한 줄무늬고양이’(15쪽)를 보고 처음에는 도둑고양이가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사정이 있어서 집을 나왔다며 태연하게 자기 보따리에서 간식을 꺼내는 고양이의 정체가 궁금해져, 고양이가 가져온 간식을 나눠먹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고양이는 원래 가게에 두면 돈과 사람을 부르는 행운을 가져다주는 ‘복고양이’였는데 주인이 괴롭혀서 자기가 번 돈을 가지고 나왔다고 한다. 눈물까지 보이면서 고생담을 이야기하는 고양이가 불쌍해서 아이들은 고양이를 위로하고 재워준다. 물론 마지막까지 고양이를 조마조마하게 만들면서.
오누이는 고양이의 손을 어루만지고 어깨를 쓰다듬어 주면서 말했습니다.
“마사 씨. 난 그런 줄도 모르고, 마사 씨가 혹시 도둑고양이는 아닐까 하고 조금 의심했어요.” (중략)
“아니, 그럴 리가 없죠! 당치도 않은 말입니다!” (34-37쪽)
그러나 다음날 아침 일어나보니 고양이는 온데간데없고 소풍 배낭 속의 과자 역시 자취를 감췄다. 오누이는 역시 도둑고양이였다며 한바탕 웃는다.
보통은 여기에서 끝을 맺겠지만, 한 장을 더 넘기면 자기 사정을 설명하는 고양이의 편지가 나온다. ‘속여서 미안하다, 너희가 꼬치꼬치 물어서 진땀이 났다, 밤에 휘파람을 불면 안 된다, 도둑이 들거든.’이라고 말하는 고양이의 편지를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난다.
유쾌한 캐릭터, 고양이
책에 나오는 중심인물은 오빠와 여동생, 그리고 고양이 이렇게 셋뿐이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 나이 또래의 천진한 오누이와, 영악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한 고양이가 친근하게 느껴진다. 고양이의 숨은 사정을 모르는 아이들은 순진한 질문을 연이어 던지고 고양이는 질문에 지레 찔려서 안절부절못한다. 양쪽을 대비시켜 더욱 재미있는 상황을 만들어낸다.
“말은 그렇게 해도 귀여움을 많이 받았나 보네요. 그 보따리 안에 들어 있는 거 전부 마사 씨 거 맞죠? 꽤 부자네요.”
논코가 그렇게 말하자 고양이는 이내 얼굴을 푸르르 떨면서 에헴, 어험, 으흠 하고 괜히 헛기침을 하기도 하고, 귀 뒤를 버석버석 긁기도 했습니다. (26-28쪽)
책 속의 오누이는 고양이에 대한 의심을 풀었지만, 책을 읽는 사람은 이미 고양이의 수상한 태도를 눈치 채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 흥미진진하게 바라본다.
천연덕스러운 고양이 캐릭터는 무척 매력적이다. 이 도둑고양이는 등장하자마자 대뜸 남의 집에 들어와서, 집을 나왔다며 ‘마치 미리 예약해 놓은 여관에 겨우 도착한 듯한 모습’(17쪽)으로 태연자약하게 재워달라고 한다. 의뭉스러운 모습이 밉지 않다. 어린이 책에서는 별로 많이 보지 못한 독특한 캐릭터라 할까.
작가는 고양이의 행동을 하나하나 자세히 표현했다. 특히 도둑고양이라는 것을 들킬까봐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표현한 묘사가 생생하고 재미있다. 집이 어디냐고 물어보자 ‘고양이는 어물거리면서 이마를 톡톡’ 치고(20쪽), 보자기에 떡 가게 상표가 찍혀 있는 것과 간식인 경단도 그 떡 가게 것이라고 지적하자 ‘보따리를 뒤로 숨기고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대답’하고 ‘화들짝 놀라는 듯하더니 이마에 돋은 땀을 닦’는다(25쪽). 아이들이 떡 가게에 고양이가 있었나 고개를 갸웃거리자 ‘고양이는 경단이 목에 걸려 캑캑 기침을’ 한다(25쪽). 경단을 혹시 슬쩍한 게 아니냐는 질문을 받고는 ‘수염을 잡아당기는가 하면 몸을 핥기도 하고, 눈을 희번덕거리며 천장 여기저기를 올려다보고, 안절부절못하며 정신없이 몸을 꿈틀거’린다(30-31쪽). 고양이의 동작 하나하나가 “나 사실은 도둑고양이야!” 하는 마음속을 말해준다. 그림하고도 딱 맞아 떨어져서 보는 맛이 있다.
거친 질감의 그림이 지닌 매력
그림은 전체적으로 거칠고 투박한 느낌을 준다. 먹선으로 쓱쓱 윤곽선을 그리고 크레파스와 물감으로 안을 채운 그림이 약간 촌스럽게 느껴지기도 하고 대충 그린 것처럼도 보인다. 그러나 이야기의 분위기와 잘 어울려서 어색하지 않다. 오빠와 동생은 고양이에 비해 단순한 선과 밝은 색으로 그려서 아이들의 순진한 분위기를 표현했다.
특히 털이 거칠거칠하고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는 고양이 그림은 캐릭터 성격을 아주 잘 나타낸다. 아이들이 편안히 잠든 사이에 누워 있으면서 한 눈만 슬쩍 뜨고 기회를 엿보는 고양이 삽화(36쪽) 등은 웃음을 자아낸다.
본문의 삽화만이 아니라 보자기를 펼치는 고양이의 뒷모습을 그린 앞 속표지 그림은 고양이가 그 다음에 무얼 할지 호기심을 자아내고, 고양이가 새끼들과 보자기를 덮고 편안히 잠든 마지막 뒤표지 그림은 글에 나오지 않은 내용까지 전해주어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한밤중의 고양이 손님》은 아이와 함께 한바탕 웃으며 볼 수 있는 책이다. 도둑질하러 온 ‘나쁜 놈’을 나쁘게 그리지 않은 이야기라는 점이 신선하다. 글은 글대로, 그림은 그림대로 즐기다보면 몇 번을 읽어도 지루하지 않고 새로운 재미를 찾을 수 있다.
2010/08/24
어도연 회보 '책 이야기'>
* 표지 출처: yes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