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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투를 빈다
김어준 글(2008) 푸른숲
행복에 이르는 방도의 가짓수가 적을수록 후진국이다. '747' 과업을 못 이룬 나라가 아니라. (15쪽)
우리나라엔 남의 욕망에 복무하는 데 삶 전체를 다 쓰고 마는 사람들, 자기 공간은 텅텅 빈 사람들, 너무나 많다. 당신만의 노선을 찾고 그리고 거기서 자존감, 되찾으시라. (중략) 오히려 이제부턴 차근차근, 남의 기대를 저버리는 연습을 하라는 거. 남의 기대를 저버린다고 당신, 하찮은 사람 되는 거 아니다. 반대다. 그렇게 제 욕망의 주인이 되시라. 자기 전투를 하시라. 어느 날, 삶의 자유가, 당신 것이 될지니.
P.S. 사람이 나이 들어 가장 허망해질 땐, 하나도 이룬 게 없을 때가 아니라 이룬다고 이룬 것들이 자신이 원했던 게 아니란 걸 깨달았을 때다. (25쪽)
가족이 자신을 위한 사설 자선단체인 줄 착각하는 넘들이 있다. 자신의 몰염치와 이기심을 오히려 가족의 권리인 줄 안다. 인간관계에 이만한 착각도 없다. 이 도착적 가족 윤리, 자본주의의 출현, 사생활의 탄생과 더불어 발명된 '신성한 가족'이란, 근대의 가족신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가족관계가 주는 스트레스와 대면할 때, 한 가지 원칙만 기억하시라.
존재를 질식케 하는 그 어떤 윤리도, 비윤리적이다. 관계에서 윤리는 잊어라. 지킬 건 인간에 대한 예의다. (100쪽)
가족 간 문제의 대부분은 그렇게 서로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지키지 않아 발생한다. 존재에 대한 예의란 게 친절하고 상냥하다고 지켜지는 게 아니다. 아무리 무뚝뚝하고 불친절해도 각자에겐 고유한 삶에 대한 배타적 권리가 있으며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스스로의 자유의지로 그 경로를 최종 선택하는 것이란 걸 온전히 존중하는 것, 그게 바로 인간에 대한 예의다. 그 어떤 자격도 그 선을 넘을 권리는 없다. 가족 사이엔 아예 그런 선이 없다는 착각은 그래서 그 자체로, 폭력이다. (120쪽)
[외동딸의 데이트 코스까지 짜 주고 남자친구한테 확인전화 하는 부모에 대해]
그런 부모들은 자식을 너무 사랑해 그런다고 표현해선 안 돼요. 단순히 과보호라고 표현되어서도 안 되고. 그들은 자식이 한 사람의 독립되고 온전한 개인이 되는 걸 방해하는 훼방꾼이자, 자식의 인생 전체를 의존적이고 유아적으로 만들어버리는 무책임한 자들이며, 자식을 보호한다며 자식의 자기결정권을 믿지도 존중하지도 않고 항상 자신들이 대신 선택하는 걸 부모의 의무라 마음대로 생각해 결국 자식을 스스로는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는 천하의 바보로 만들어버리는데도 그걸 사랑이라 믿는,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 가장 멍청한 부류의 부모들이야. 아, 씨바, 좀더 나쁜 말 없나. (313쪽)
예전에는 김어준 총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사실 특별한 이유도 없었다. 산적 같이 생긴 외모도 그렇고(총수님, 죄송...;) 날것 같은 딴지일보의 말투도 부담스럽고... 아무튼 그랬다.
그런 생각을 한 방에 바꿔준 것이 한겨레신문에 연재한 상담 코너 '그까이꺼 아나토미'.
이 사람이 이런 사람이었어? (넙죽)
요즘 다른 게시판을 보면서도 느끼는 거지만, 자기가 결정할 문제를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남한테 확인을 받고 빗나가지 않았다는 걸 확인하려는 사람이 왜 그리 많은 것이며(사실 남 얘기만은 아니다), 반대로 남의 삶을 휘젓는 오지라퍼들은 왜 그리 많은 건지.
거기에 일침을 놓는 총수의 '인생은 이런 거'.
마음에 든다.
2011/05/05
* 표지 출처: yes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