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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부모
이승욱, 신희경, 김은산 글(2012) 문학동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이가 어른이 되기 위해 거쳐야 할 이 과정을 견디는 것뿐이다. 아이가 어른이 되는 과정이기 전에 내가 어른이 되는 과정이며, 아이에게 어른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부모가 되는 과정이다. 개인적으로는 고통스럽고 흔들리는 경험이다. 그러면서 아이의 불안한 성장을 지켜보며 감내해야 하는 것이 나 자신이 어른으로 성장하는 마지막 과정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가장 집착할 수밖에 없는 대상인 아이에게서 독립하는 것. 아이가 나에게서 독립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아이에게서 독립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핵심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중략)
아이가 대학을 그만두기로 결정했을 때 모든 것이 확연해졌다. 아이가 나의 가치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야말로 가장 건강하게 내가 그동안 말해왔던 가치를 제대로 받아들이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아이가 항상 독립된 인간, 책임지는 인간, 배려와 성찰을 고민하는 인간이 되기를 바랐다. 그런데 아이는 무엇보다 나의 가치를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독립된 인간이 되는 길을 시작한 것이다.
(중략)
그렇다면 나는 부모로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세상에서 가장 편하고 안전한 쉼터를 제공하는 것이다. 스무 살 나이에 아무 소속 없이 겪어야 할 세상이 얼마나 엄혹하고 힘들겠는가. 깨지고 지쳤을 때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는 곳, 마음껏 쉬고 충전한 뒤 다시 바깥으로 나가 세상을 경험하며 성장하는 과정을 아픈 마음으로 지켜보는 것, 그것이 가장 아이를 위하는 일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이 과정을 통해 결국 아이는 자신만의 가치를 형성하고 자기 삶의 의미를 탐색해 나가며 인간과 세상을 보는 관점을 확립해갈 것이다. (279~28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