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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내처 외국 소설에 외국 동화만 읽고 통 우리나라 책을 안 읽다가 오랜만에 우리나라 소설을 읽었다. 노작가의 재치 넘치는 글에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마지막 단편을 읽다가 웃음이 절로 나오는 대목이 있길래, 마침 옆에 있는 딸내미한테 소리내어 읽어줬다. 재미없으면 한두 문장 듣다가 "됐어~"로 끊을 녀석이 가만히 듣는다는 건 나름대로 괜찮다는 소리.
그런데 중간의 '딱딱하면 물 부어서'부터 웃음이 터져서 도저히 못 읽겠다. 속으로 읽을 땐 괜찮았는데 소리 내어 읽으니 머리 속에 그림이 좌악 펼쳐지면서 어찌나 웃기던지. 딸내미한테 니가 좀 읽으라고 넘겼더니 쿡쿡거리며 읽다가 이 녀석도 웃음보가 터졌다. '피자집, 통닭집, 오리집...'에서. ^^;;
문제의(?) 대목을 소개하자면...
남자보다 조금 늦게 전화를 받은 내 오른편의 여자는 받자마자 짜증부터 냈다.
아니, 이제 일어났으면 일어났지 당신은 전기밥솥 속에 지어놓은 밥도 혼자 못 퍼먹어요? 뭐라고요? 언제 지어놓은 밥이냐구요? 내 참 기가 막혀서, 고작 그거 물어보려고 바쁜 사람한테 전화 걸어요. 내가 지금 놀러 나온 줄 알아요. 밥이 오래돼서 딱딱하게 굳었으면 굳었지, 그게 왜 내 탓이야. 당신이 제때제때 찾아 먹지 않으니까 그렇게 될 수밖에. 딱딱하면 물 부어서 불려서 먹구려. 아니면 시켜 먹든지. 이제 자장면은 진저리난다고? 거봐, 자장면 진저리나게 먹는 동안 아까운 밥이 굳어버린 거잖아요. 정 못 먹겠으면 당신 좋은 거 시켜 먹구려. 냉장고에 잔뜩 스티커 붙여놨잖아요. 중국집 말고도 피자집, 통닭집, 오리집, 순대집, 김밥집, 없는 게 없으니까 맘대로 골라서 시켜 먹든지, 싫으면 말구. 흥, 웬 안 하던 돈 걱정. 동네서 아직은 그 정도의 신용은 유지하고 있으니까. 걱정 말고 식성대로 시켜 먹어. 또 또 잔소리. 끊어. 나 지금 고객 만나러 가는 길이니까, 심사 뒤집지 말고.
(박완서 <그래도 해피 엔드> 《친절한 복희씨》 277~278쪽 중에서)
요즘 읽은 책은 대부분 다 번역이 잘 되어서 별로 걸리는 데 없이 읽었지만, 역시 원래 우리말로 쓴 소설에는 번역문에 없는 맛? 분위기? 어쨌든 그런 게 분명히 있다. 이 감칠맛 나고 천연덕스러운 분위기라니. 여자가 어쩌구 남자가 어쩌구 설명하지 않아도 저 자연스러운 대화문만 읽으면 두 사람의 성격이나 평소 생활이 눈앞에 선하지 않은가.
아, 나도 저렇게 자연스러운 글을 풀어내고프다. 아직은 멀고 멀었지만~!
마지막 단편을 읽다가 웃음이 절로 나오는 대목이 있길래, 마침 옆에 있는 딸내미한테 소리내어 읽어줬다. 재미없으면 한두 문장 듣다가 "됐어~"로 끊을 녀석이 가만히 듣는다는 건 나름대로 괜찮다는 소리.
그런데 중간의 '딱딱하면 물 부어서'부터 웃음이 터져서 도저히 못 읽겠다. 속으로 읽을 땐 괜찮았는데 소리 내어 읽으니 머리 속에 그림이 좌악 펼쳐지면서 어찌나 웃기던지. 딸내미한테 니가 좀 읽으라고 넘겼더니 쿡쿡거리며 읽다가 이 녀석도 웃음보가 터졌다. '피자집, 통닭집, 오리집...'에서. ^^;;
문제의(?) 대목을 소개하자면...
남자보다 조금 늦게 전화를 받은 내 오른편의 여자는 받자마자 짜증부터 냈다.
아니, 이제 일어났으면 일어났지 당신은 전기밥솥 속에 지어놓은 밥도 혼자 못 퍼먹어요? 뭐라고요? 언제 지어놓은 밥이냐구요? 내 참 기가 막혀서, 고작 그거 물어보려고 바쁜 사람한테 전화 걸어요. 내가 지금 놀러 나온 줄 알아요. 밥이 오래돼서 딱딱하게 굳었으면 굳었지, 그게 왜 내 탓이야. 당신이 제때제때 찾아 먹지 않으니까 그렇게 될 수밖에. 딱딱하면 물 부어서 불려서 먹구려. 아니면 시켜 먹든지. 이제 자장면은 진저리난다고? 거봐, 자장면 진저리나게 먹는 동안 아까운 밥이 굳어버린 거잖아요. 정 못 먹겠으면 당신 좋은 거 시켜 먹구려. 냉장고에 잔뜩 스티커 붙여놨잖아요. 중국집 말고도 피자집, 통닭집, 오리집, 순대집, 김밥집, 없는 게 없으니까 맘대로 골라서 시켜 먹든지, 싫으면 말구. 흥, 웬 안 하던 돈 걱정. 동네서 아직은 그 정도의 신용은 유지하고 있으니까. 걱정 말고 식성대로 시켜 먹어. 또 또 잔소리. 끊어. 나 지금 고객 만나러 가는 길이니까, 심사 뒤집지 말고.
(박완서 <그래도 해피 엔드> 《친절한 복희씨》 277~278쪽 중에서)
요즘 읽은 책은 대부분 다 번역이 잘 되어서 별로 걸리는 데 없이 읽었지만, 역시 원래 우리말로 쓴 소설에는 번역문에 없는 맛? 분위기? 어쨌든 그런 게 분명히 있다. 이 감칠맛 나고 천연덕스러운 분위기라니. 여자가 어쩌구 남자가 어쩌구 설명하지 않아도 저 자연스러운 대화문만 읽으면 두 사람의 성격이나 평소 생활이 눈앞에 선하지 않은가.
아, 나도 저렇게 자연스러운 글을 풀어내고프다. 아직은 멀고 멀었지만~!